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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화된 속초 장천마을
토박이 42가구 중 절반 주택 전소…못자리에 쓸 볍씨도 소실
2002년 태풍 루사 때 떠내려가 다시 지은 집 이번엔 화마 덮쳐
화마가 속초 장천마을을 덮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일 밤 9시가 조금 안 된 때였다. 마을에서 4㎞가량 떨어진 고성군 원암리에서부터 몸집을 키운 화마는 토박이 42가구가 모여 사는 장천마을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이 중 20가구의 집은 모두 불탔고 나머지 집들도 피해를 입었다.
장천마을은 오래전에 산불진화훈련 시범마을로 지정돼 주민들의 산불 대처능력은 뛰어났지만 초속 20~30ｍ를 넘나드는 강풍을 업은 화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5일 오전 찾은 장천마을은 전날 밤의 악몽을 하소연하듯 자욱한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심수빈(67)씨는 전날 화마에 집과 축사 등으로 쓰던 부속건물 등을 몽땅 잃었다. 심씨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번에 불탄 집이 2002년 태풍 루사 때 집이 떠내려간 뒤 다시 지은 집이라는 것이다. 검은 골조와 불에 그을린 장독대 등 온통 검게 변한 심씨의 집 터 한쪽에는 염소 10여마리와 개 2마리가 아직도 놀란 눈으로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씨는 “밤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불이 실개천 건너편에서 집들을 태우며 바닷가 쪽으로 내려갔었는데, 11시께 다시 마을 쪽으로 돌아왔고 우리 집으로 200ｍ를 날아와 붙었다”고 전날밤 상황을 설명했다. 심씨는 “내일모레 못자리를 하려고 준비했던 볍씨도 모두 탔다”며 막막해했다.
김성수 마을 이장은 “최근에 외지에서 많이 이사를 와 총 100여가구가 넘지만 오래전부터 터를 잡은 주민은 42가구”라며 “이 중 20가구의 집은 모두 불탔고 나머지도 반소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속초 장천마을=이규호기자 hoku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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