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 예약안내 > [역경의 열매] 여운학 (9) 육체의 고난 통해 잠들어 있던 영혼 눈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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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교류를 넘어 도시 간 교류가 발전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외국 도시와 ‘자매도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자매도시란 도시 상호 간 문화 교류를 제휴하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특별하게 친선·우호관계를 맺는 도시를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이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장려한 뒤 한국에도 많은 도시가 외국 여러 도시와 자매도시를 맺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서울이다. 서울은 외국 23개 자매도시와 39개 우호도시를 맺는 등 교류를 넓히고 있다. 서울뿐 아니다. 부산은 23개국 26개 도시와 자매도시를 맺고 있으며 인천도 15개국 22개 도시와 자매도시 협약을 체결했다. 자매도시는 국가 간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매도시를 맺는 곳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 공무원이 한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는 일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이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예(禮)와 정성을 다해 맞이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다섯 가지의 예가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 예를 관장하는 정부의 기관은 예조(禮曹)였다. 나라의 예는 예조에서 관장하며 고을 목민관은 작은 규모의 예에 관한 업무를 수행했다.

예에 관한 원칙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내용이 ‘예전(禮典)’이다. 예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나라에는 오례(五禮)가 국법으로 정해져 있으니, 길례(吉禮)·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嘉禮)의 다섯 가지 예를 말한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라는 책에 그 내용과 절차가 기록돼 있어 국법의 역할을 했다. 길례는 길(吉)한 행사, 흉례는 흉한 행사·초상 같은 불행한 의식이며 군례는 군대 의식이고, 빈례는 외국 사신이나 지방관을 찾는 상관에 대한 예의며 가례는 혼인 예절 같은 의식을 뜻한다. 목민심서에는 이 예전에 관한 내용도 자세히 담겨 있다.

▶예전 편에서 먼저 언급되는 ‘제사’

▷사적으로 행하던 제사는 근절해야

예전의 첫 번째 조항은 제사(祭祀) 문제다. 사실 제사는 전통사회에서와 현재 시대를 그대로 비교하기에는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 관아에서 주관하는 각종 제사가 있었다. 3단의 제사라 해 사직단(社稷壇)·여단(厲壇)·성황단(城隍壇)에 제사를 지내야 했다. 제사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지내는 제사와 비정기적으로 지내는 제사가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 군현은 각자 맡은 행사를 그대로 진행했다.

지금은 관이 주도하는 제사는 대부분 사라졌다. 남아 있는 제사는 민간인 주도 행사가 아니고서는 전무하다. 문묘 제사도 모두 민간인 차원에서 진행될 뿐, 관의 일은 아니다. 제사 문제를 오늘에 맞춰보면 국가 기념일에 해당하는 행사다. 사실 그것도 제사라기보다는 기념행사에 가깝다.

제사 조항에서 가장 많이 취급된 기우제는 가뭄에 비가 오기를 기대해 명산대천에서 임금이나 목민관들이 제사를 지내는 일이다. 역시 지금은 사라졌다.

제사에서 반드시 언급할 내용의 하나는 바로 음사(淫祀·정당한 명분도 없고 분명한 이유 없이 미혹돼 지내는 제사) 문제다. 다산은 그 시대의 풍속에 따라 정당한 제사야 경건하게 올리도록 권장했지만, 민간인 사이에서 사적으로 행해지던 미신인 제사는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전의 두 번째 조항 ‘빈객’

▷외국 손님은 예를 다해 맞아야

두 번째 조항은 빈객이다. 빈객은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에 관한 얘기다.

당시에는 중국 사신의 왕래가 빈번했으며 중앙관청에 소속된 관리의 지방 출장이나 감사도 잦았다. 여기에 관련된 예절을 다룬 내용이 바로 빈객이다.

빈(賓)은 오례의 하나인 빈례에 해당하는데, 여기에 대한 예절에는 언급해야 할 내용이 많다. 오늘날로 보면 외국 정상이나 외교관들의 왕래에 어떤 예절을 지켜야 하느냐와 관계가 깊다.

다산은 빈객에 대한 원칙을 천명했다.

“빈객을 대접하는 데에 물품이 너무 후하면 재물을 낭비하는 것이요, 너무 박하게 하면 환대하는 뜻을 잃은 것이다. 옛날 임금들은 이런 것을 위해 절도에 맞게 예를 만들어 후한 경우라도 지나치지 않게 하고, 박한 경우라도 줄이지 못하게 했으니, 그 예를 제정한 근본을 소급해봐야 한다.”

손님 접대가 부족해도 안 되지만 지나친 것도 곤란하다는 얘기다. 오늘날 손님 접대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이다.

예절의 합리적인 처리를 위해 과거에는 까다롭고 세밀한 기준을 제시했다. 가령 밥상이나 주안상에 놔야 할 음식의 숫자도 정하고 종류까지 정하는 예식을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일을 따질 필요도 없고 지나친 예는 서로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다산은 감사가 군현을 순방할 때 일어나는 폐단이 많다는 점을 깨닫고 이에 대해 지적했다.

“오늘날 감사의 지방 순찰은 천하의 큰 폐단이다. 이 폐단을 고치지 않는다면 부세와 요역이 번거롭고 무거워 백성이 모두 못살게 될 것이다.”

지나친 접대를 위한 재물 낭비는 백성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시에는 감사 순행에 환대를 해줘야만 목민관이 좋은 고과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은 일이 벌어졌다. 깨죽을 먹여 키운 최고 품질의 쇠고기를 대접하고 사람 젖을 먹여 키운 돼지고기로 감사를 대접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다산은 상관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이유로 백성에게 지나치게 불편을 초래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내시 같은 임금의 최측근 인사들이 지방에 와서 일을 볼 때도,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제지할 수 있어야지 그냥 두고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다산은 중국의 옛날 목민관 예를 들어 천자의 행차에도 백성이 전혀 괴로움을 당하지 않도록 조치한 중국과 달리 조선의 목민관은 임금이나 감사의 행차에 온갖 부산을 떨어 백성들에게 숱한 고통을 준다면서 그런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을마다 수천 명의 백성을 동원해 천자의 행차를 환영했는데, 어떤 목민관은 그렇게 하지 않고도 예절에 맞게 천자의 행차를 치를 수 있었다. 지금 조선의 목민관들은 감사를 마주하는 데에도 백성을 몰아치기를 개와 닭처럼 다루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백성의 혹사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목민관을 꾸짖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빈객 조항의 마지막 문제는 외국의 칙사를 대접하는 문제다.

“칙사에 대한 접대를 지칙(支勅)이라고 이른다. 지칙은 서북 지방의 큰 정사(政事)다.”

평안도나 황해도는 중국 사신들이 지나는 통로다. 그만큼 그 지역에서는 외국 사신의 대접과 환대 문제가 언제나 말썽거리였다. 조선은 중국에 조공을 바쳐야 하는 제후국이었다. 중국 황제가 보내는 칙사에게는 황제와 비견되는 대우를 해야 했다. 약소국인 조선에 그 문제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다산은 당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자세히 거론해 예의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들 마음에 불편이 없도록 대접하기 위한 모든 세세한 이야기를 열거했다.

지금은 명목적으로 유엔에 가입한 국가는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앞에 언급했던 자매도시처럼 국가뿐 아니라 도시 간 교류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화한 세상 속에서 외국과의 교류는 예전보다 훨씬 빈번해졌고 관례도 중요해졌다.

외국 사신을 환대하는 문제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도 자매도시를 맺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오늘날 지방 목민관도 외교의 ‘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함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