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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전기료 인하안 심사 때 배임 여부 법적검토 거친 후 보류


한국전력 이사회가 지난 21일 이례적으로 정부의 여름철 누진제 완화안을 보류하며 반기(反旗)를 든 배경에는 '한전의 손실 증가에 대해 정부가 제도적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사들의 공감대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한전 사외이사인 A씨는 본지 통화에서 "21일 이사회에서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할 경우, 이사진이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회사 측이 여러 판례를 보고했지만 결론은 불명확했다"며 "사외이사들이 내린 결론은 정부가 한전의 손실을 보전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한전이 배임 여부에 대해 문의한 대형 법무법인 2곳도 "한전이 가입한 임원 책임보험으로 배임 등 불법행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한전 이사회는 사내이사 7명, 사외이사 8명을 합해 총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요금제 개편안은 과반수 가결이기 때문에 사외이사 중 한 명만 찬성했어도 가결될 수 있었으나, 사외이사들이 한뜻으로 뭉치면서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은 특히 정부의 일회성 예산 지원보다는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 폐지 혹은 축소 등 제도적 보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이사는 "정부가 예산으로 한전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식은 임시방편일 뿐이고, 국회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높아 보완책이 안 된다는 데 이사진의 공감대가 있었다"고 했다.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는 전기 사용량이 월 200㎾h 이하인 소비자에게 월 4000원 한도로 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로, 이를 폐지하면 한전 입장에선 연 4000억원의 적자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선 '전기 사용량이 적은 저소득층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전 이사회가 지난 이사회에서 주택용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했다고 가정하면 한전에는 연간 2800억원 정도 추가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이미 현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올 1분기에만 63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한전 이사들 입장에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안이었다.

게다가 한전 소액주주들은 '정부 개편안을 의결하면 이사들을 배임죄로 고발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한전은 이사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이사회를 앞두고 대형 법무법인 2곳에 '누진제 개편안을 이사회에서 의결할 경우 배임에 해당하는지'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한 법무법인의 답변서는 이사회에 보고됐으나, 한전은 그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A 이사는 이에 대해 "법무법인의 답변서 내용은 '배임 여부는 정부의 지원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초 예정대로 이달 안에 한전 이사회를 다시 열어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날 "한전에 대한 손실 보전 방안을 계속 협의 중에 있다"며 "이번 주 중이라도 한전이 이사회를 열어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하면 곧바로 관련 절차를 거쳐 산업부 장관이 새로운 요금제를 이달 내에 고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전 이사회를 설득하기 위해 정부는 다각적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정부가 주택용 누진제뿐 아니라 전기요금 체계 전반을 개편하는 안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한전의 손실을 줄여주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도 이르면 이번 주 초 이사회를 다시 열 계획이다. 한전 관계자는 "정부가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안이라, 최대한 빨리 임시 이사회를 열어 의결할 방침"이라며 "다만 아직은 임시 이사회 날짜를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현묵 기자 sean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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