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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2009년 6월25일 혈육이 부담되는 사회

“피는 물보다 진하다”. 혈육의 정은 다른 어떤 것보다 깊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인데요. 하지만 상황에 따라 피를 나눈 혈육도 모르는 척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나 혼자 살아갈 여유도 없을 때가 대표적인데요. 경제적 빈곤이 혈육의 정도 끊게 만드는 사회. 1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서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으로 소개됐습니다.


‘헤어진 가족 15% 씁쓸한 상봉 거부’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서울 신림동에 사는 김모씨의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김씨는 인근 경찰서의 ‘헤어진 가족 찾기 센터’를 찾았는데요. 김씨의 오랜 해외 생활로 연락이 끊긴 친누나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김씨의 요청을 받은 경찰은 인적 사항 조회를 통해 김씨의 누나로 추정되는 1명을 경기 성남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누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며 동생과의 상봉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김씨에게 누나를 ‘소재 불명’으로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누나가 동생을 만나길 거부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단순히 김씨만의 독특한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경찰청에 따르면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 업무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전국에서 3만4010명이 가족을 찾아달라고 신청했다고 합니다. 이 중 8776명은 실제 가족을 만났다고 하는데요. 반면, 가족 찾기 신청자 중 4243명은 가족을 찾았음에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상대가 가족과의 상봉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전체 신청에 비해 ‘상봉 거부’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2006년 11.5%였던 상봉거부 비율은 2007년 13.1%로 증가했고, 2008년에는 13.6%, 2009년 5월에는 15.5%로 꾸준히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상봉 거부가 늘어난 것일까요? 기사에는 그 원인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경찰의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는 원래 6·25전쟁이나 실종, 해외입양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진 가족을 찾아준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최근 들어서는 경제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민원인들이 장기간 떨어져 있던 가족을 다시 찾아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경제 불황 등의 여파로 피붙이가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만나려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을 찾는 사람은 혈육이 자신과의 만남을 거부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나 봅니다. 경찰은 2005년부터 민원인의 심경을 고려해 사실상의 ‘상봉 거부’는 ‘소재 불명’으로 통보하도록 내부 지침을 정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2009년 3월부터는 사실대로 말해 주는 것으로 지침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가족을 만나지 못한 민원인의 계속되는 신청으로 경찰 업무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 사유가 이별 사유가 됐던 가족들은 아무래도 다시 만나기가 힘든 경우가 많았다”며 “세태가 각박해지면서 가족의 정도 덩달아 약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가족과의 만남을 거부한 사람들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 외에 말 못 할 사연이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별한 가족으로부터 기억하고 싶지 않은 피해를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사연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각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어떤 이유로든 가족과의 만남을 거부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도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 아픈 기사입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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